현대자동차그룹의 스타트업 투자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스타트업과 혁신기업 투자가 매달 1개꼴로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과감한 투자는 개방형 혁신을 앞세운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속도를 더 할 전망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또 현대차그룹에 스타트업 문화를 이식, 그룹의 체질을 바꾸려 하고 있어 향후 행보가 더 주목된다.
10일 데이터뉴스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사업보고서와 관련업계를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작년 1월 이후 공개적으로 알려진 스타트업 투자건만 16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월 1회 꼴로 스타트업 투자를 진행한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 호출 서비스 기업 그랩에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11개 국내·외 기업에 투자했다. 올해도 이미 5개 기업에 투자를 진행했다.
특히 지난해 9월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에 오른 뒤 투자 규모도 커지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11월 그랩에 2억5000만 달러(2840억 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해 1월 현대차가 이 기업에 투자한 2500만 달러(284억 원)의 10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현대·기아차의 외부 기업 투자 중 최대 규모였다.
하지만, 이 기록은 올해 3월 현대·기아차가 인도 차량 호출 서비스 1위 기업 올라에 3억 달러(3384억 원)를 투자하기로 하면서 4개월 만에 갱신됐다. 현대·기아차는 또 지난달 크로아티아의 고성능 전기차 기업 리막오토모빌리에 1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의 투자 대상은 혁신적인 서비스 모델과 신기술에 집중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우선 그랩과 올라를 비롯해 인도 2위 차량 공유 기업 레브, 호주 차량 P2P 서비스 기업 카넥스트도어, 이동수단에 탑재되는 배터리 공유 서비스를 하는 중국의 임모터, 미국의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 미고 등 혁신적인 서비스 기업에 투자를 진행했다. 현대차그룹은 그랩과 올라 두 곳에 대한 투자액만 6000억 원이 넘을 정도로 혁신적 서비스 모델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집중했다.
이처럼 과감한 투자는 정 수석부회장의 뜻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22일 칼라일그룹 초청 대담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며 “우리의 비즈니스를 서비스 부문으로 전환한다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 체제의 현대차그룹이 국내·외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오른쪽)과 송창현 코드42 대표가 서울 논현동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만나 의견을 나눈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현대차는 코드42에 전략적 투자를 하고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 사진=현대자동차
현대차그룹의 최근 스타트업 투자 목록의 또 다른 특징은 미국의 라이더 및 AI 개발기업 메타웨이브를 비롯해 딥러닝 기반 영상 인식 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 스트라드비젼, 인간행동 예측기술을 연구하는 미국 기업 퍼셉티브오토마타, 컴퓨터 비전 활용 딥러닝 기반 AI 기술을 연구하는 이스라엘 기업 알레그로.ai, AI를 활용한 사물인식, 행동패턴 분석기술을 보유한 중국 기업 딥글린트, 이스라엘의 AI 기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기업 오디오버스트 등 AI 기반의 기술 기업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자율주행을 비롯한 미래 모빌리티 시장 대응을 위해 AI 기술 확보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설명이다.
현대차그룹이 투자한 기업의 국적이 미국, 한국, 이스라엘,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이스라엘, 호주, 크로아티아 등 다양하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처럼 여러 국가의 실력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할 수 있는 것은 정 수석부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전략기술본부와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가 주된 역할을 했다. 전략기술본부는 모빌리티, AI 등 신사업과 전략투자를 맡고 있고, 미국, 이스라엘, 독일, 한국에서 운영 중인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는 현지 유망 스타트업 발굴과 육성, 공동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현대차그룹에 스타트업 문화를 이식해 체질을 변화시키는데도 중점을 두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4월 1일부로 임원 인사제도를 개편했다. 이사대우, 이사, 상무까지의 임원 직급을 상무로 통합해 사장 이하 6단계 직급을 4단계로 축소했다. 연말 정기 임원인사도 경영환경, 사업전략의 변화와 연계한 연중 수시인사 체계로 바꿨다. 현대차그룹은 이 같은 변화가 일 중심의 수평적 조직문화를 촉진하고 우수인재에게 성장기회를 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반 직원에 대한 인사제도도 자율성과 기회 확대를 위해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는 올해부터 신입사원 채용방식도 기존의 연 2회 정기 공채 대신 수시채용으로 바꿨다. 회사 측은 이 같은 변화가 미래 산업환경에 적합한 인재를 적기에 확보하는데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또 기업문화 혁신 차원에서 최근 직원들의 복장 자율화와 자율 출퇴근제도 도입했다.
이와 관련, 정 수석부회장은 칼라일그룹 초청 대담에서 그룹의 변화와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유연한 기업문화 정착과 조직문화 혁신을 강조했다. 과거 현대차그룹은 전 직원이 일사불란하게 따르게 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했지만, 지금은 직원들과 같이 논의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방식으로 더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앞으로 현대차그룹의 기업문화는 스타트업처럼 더 많이 변할 것”이라며 “더 자유로워지고 자율적인 의사결정 문화로 변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동식 기자 lavita@dat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