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금융을 확 바꾸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여러 개인 계좌를 관리하고, 조언을 제공하며, 거래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뱅가드, 블랙록, 이토로 등 글로벌 금융사들이 고객 서비스, 포트폴리오 분석, 투자 통찰력을 위해 AI를 도입했다고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복잡한 자산 관리 부담이 줄고, 기존에 금융자문비용을 감당하지 못했던 대중에게도 전문적인 조언이 가능해졌다.
WSJ에 따르면, AI 에이전트가 우리의 금융 생활 전체를 관리할 준비를 하고 있다. AI는 월스트리트와 개인 투자자들을 역사상 유례없는 방식으로 재편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자산을 직접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복잡함을 잘 안다. 여러 개의 앱과 로그인, 은퇴·과세 계좌, 퇴직연금. 주식·채권·현금이 어떻게 배분돼 있는지 파악하고, 적절한 자산 구성을 고르며, 정기적으로 리밸런싱하는 것은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복잡성을 덜기 위해 재무 상담가에게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AI 비서가 재무 상담을 대신할 것이라고 WSJ은 예측했다.
테크와 금융업계 경영진들은 월스트리트가 기술로 끊임없이 재창조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AI 도구에 수십억 달러(수조 원)를 투자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AI 에이전트가 개인을 대신해 여러 계좌에서 움직이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뱅가드 그룹의 최고정보책임자(CIO) 니틴 탄돈은 “개인 AI 어시스턴트가 조언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한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자 브라이언 장과 키어런 가비는 “AI 에이전트의 역량은 곧 임계점에 도달해, 은행과 금융 서비스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연구자는 “예를 들어 AI가 은행 계좌 잔액과 신용카드 부채를 확인하고, 사용자가 사전에 설정한 동의 수준에 따라 최적의 상환 전략을 제안·실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개발 중인 많은 도구들은 아직 대중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AI가 통제 불능 상태로 오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뱅가드는 전체 포트폴리오를 분석하고 조언을 제공하는 AI를 개발 중이다. 이는 비용 문제로 상담을 받지 못하는 수천만 중산층에게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탄돈은 “5000만 명의 고객에게 상담을 제공하려면 상담사를 무한정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AI라면 제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뱅가드는 이미, 고객센터 야간 전화를 처리하는 음성 AI 챗봇을 도입해 높은 만족도를 기록하고 있다. 재무 상담사용 생성형 AI 도구도 제공한다. 이는 특정 고객의 이해 수준에 맞춰 콘텐츠를 맞춤 재작성해준다.
다만, AI가 인간 상담사를 완전히 대체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인간적 신뢰와 관계는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담사 업무 중 노트필기, 포트폴리오 분석 같은 ‘반복 업무’는 AI가 처리해, 상담사는 고객과의 접촉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젊은 세대는 무료 AI 툴이 제공하는 분석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이는 상담 수수료를 압박할 수 있다.
블랙록은 ‘아시모프’라는 AI 분석 도우미를 도입했다. 아시모프는 보고서와 규제 서류를 분석하고, 대규모 데이터를 스캔한다. 소셜미디어와 실시간 뉴스를 모니터링해 투자 분석도 돕는다. 인간 분석가가 몇 시간 걸릴 일을 즉시 처리하고, 결과를 바로 금융 모델에 반영한다. 블랙록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롭 골드스타인은 “아시모프는 사실상 인간에게 ‘슈퍼파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인 이토로는 고객 대상 AI 툴 세트를 지난 8월 출시했다. 일부 숙련 고객만 이용할 수 있지만, 이 AI는 개인 투자자의 거래 전략을 코딩해 실행해준다. 헤지펀드식 퀀트 전략을 일반인도 쓸 수 있게 된 셈이다. 또한 AI 어시스턴트 ‘토리’를 앱에 탑재해 투자 조언을 제공한다. 이토로 최고경영자(CEO) 요니 아시아는 “가까운 미래에는 AI가 개인의 모든 자산과 부채를 파악해 여러 계좌에서 거래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사들은 AI 도입 속도와 리스크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WSJ는 지적했다. 잘못된 거래 실행이나 지나치게 위험한 조언은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뱅가드 등 대형사는 강력한 안전장치를 도입하며 신중하게 접근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케임브리지 연구자들은 “이 수준의 자율성은 위험을 수반한다”며 “금융사와 규제기관은 반드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권세인 기자